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던 걸까? (만만해 보이는 사람 특징)
유독 특정한 사람에게만 시비가 걸리고
놀림을 받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같은 반에 서른 명이 있었는데, 꼭 그 아이만 그런 일이 일어났죠.
혹시 학창시절에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다면, 왜 하필 내가 따돌림 당했을까? – 당신이 따돌림 당한 진짜 이유를 함께 보셔도 좋습니다.
이런 일은 회사에도 일어납니다.
다른 팀원한테는 존댓말 쓰던 사람이 그 사람에게만 반말을 하고
다들 야근을 싫어하는데 부탁은 항상 그 사람만 들어줘야 했죠.
회식 자리에서 농담의 소재가 되는 사람도 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회사를 옮기고, 모임을 바꾸고, 사는 동네를 옮겼는데도
비슷한 일이 반복됩니다.
장소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는데 결과가 같다면,
남은 변수는 나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이 반복은 우연이 아닙니다. 한 번 나쁜 운은 계속 나쁜 이유 — 자존감이 만드는 관계 패턴에서 그 구조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밤에 이불을 덮고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던 걸까?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아플 수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으시면 아마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착할 겁니다.
만만해 보인 이유는 다름아닌 걸음걸이
여러분에게 쉽게 위로부터 드리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사람은 만만해 보이는 사람을 몇 초 만에 고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놀라울 만큼 정확합니다.
1981년, 두 명의 연구자가 아주 기묘한 실험을 했습니다.
뉴욕의 번화가에 카메라를 숨겨놓고
지나가는 행인 수십 명을 몰래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을 교도소로 가져갔습니다.
폭력 범죄로 수감된 사람들에게 영상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중에서 한 명을 고른다면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
결과가 소름 끼쳤습니다.
수감자들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고, 상의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목한 사람이 겹쳤습니다.
그리고 판단에 걸린 시간은 몇 초에 불과했습니다.

더 이상한 건, 그들이 고른 기준이 우리 예상과 달랐다는 겁니다.
이들은 체격이 작은 사람을 고른 게 아니었습니다.
여자라서 고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라서 고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덩치 큰 남자가 지목되기도 했고, 작고 마른 여성이 지목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본 건 다름 아니라 걷는 방식이었습니다.
- 보폭이 이상하게 좁거나, 이상하게 넓은 사람
- 팔과 다리가 따로 노는 사람
- 발을 바닥에서 제대로 떼지 않고 끌듯이 걷는 사람
- 몸의 중심이 좌우로 흔들리는 사람
- 시선이 계속 바닥이나 발끝에 가 있는 사람
수감자들은 이걸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왜 저 사람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 했습니다.
그냥 “쉬워 보인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들은 상대를 유심히 분석한 게 아닙니다.
그저 읽은 겁니다.
나쁜 사람일수록 더 잘 읽는다
2013년에 후속 연구가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사이코패스 성향을 측정한 다음,
걷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여주고 “취약해 보이는 사람”을 고르게 했습니다.
그 결과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을수록 더 정확했습니다.
심지어 실제로 과거에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을
단지 걸음걸이만 보고 골라냈습니다.
그 사람의 과거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당신을 괴롭혔던 그 사람은 당신을 알아본 게 아닙니다.
당신이 이미 겪은 일을 알아본 겁니다.
이미 한 번 당한 사람은 몸에 흔적이 남습니다.
어깨가 조금 말리고, 시선이 조금 내려가고, 걸음이 조금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리고 그 흔적을 가장 잘 읽는 사람이 하필 다음 가해자인거죠.
그래서 한 번 당한 사람이 또 당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당신이 또 운이 나빴던 게 아니었습니다.
공격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약한 사람’을 고른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십니다.
“결국 내가 약해서 그런 거네.”
아닙니다. 연구를 더 들여다보면 기준이 다릅니다.
1988년 아동 괴롭힘 연구에서 밝혀진 건
가해자가 표적을 고르는 진짜 기준이
약함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가해자가 원하는 건 이겁니다.
- 건드렸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미리 알 수 있는 사람
- 되받아치지 않을 사람
- 어른이나 상사에게 알리지 않을 사람
- 무리에서 자기 편을 데려오지 않을 사람
한 마디로 내 행동에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해자는 강약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손익을 계산합니다.
아무리 몸집이 작아도 건드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사람은 고르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덩치가 커도 절대 반격하지 않을 게 확실한 사람은 고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목된 이유는 약해서가 아니라
결과가 뻔해 보여서입니다.
조용하지 않았는데도 당하는 이유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드셨을 수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성격이 급하고 반응이 컸는데,
그래도 당했다고요.
맞습니다.
괴롭힘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올베우스의 분류를 보면 피해자는 한 종류가 아닙니다.
수동형은 우리가 아는 그 모습입니다.
조용하고, 위축되어 있고, 갈등을 피합니다.
도발형은 정반대입니다.
쉽게 흥분하고, 크게 반응하고,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물건을 던집니다.
전혀 다른 두 유형인데 왜 둘 다 표적이 될까요?
둘 다 반응이 예측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수동형은 건드리면 아무것도 안 할 게 확실합니다.
도발형은 건드리면 폭발할 게 확실합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둘 다 재미있는 버튼입니다.
누르면 반드시 소리가 나니까요.
당신이 조용했든 시끄러웠든,
지목된 이유는 같은 것이지요.
참고로 ‘되받아치지 못하는 상태’ 자체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이 화를 못내는 사람이 된 이유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지금까지 만만해보일 수 있는 신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으로 새기 아주 쉽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그런 신호를 보내서 당한 거네.”
아닙니다. 이건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격수가 어떤 표적을 골랐다고 해서
표적에게 총 맞을 책임이 생기지 않습니다.
사기의 가해자가 문제이지 피해자가 문제는 아닙니다.
이건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호를 읽었다는 사실은 상대가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일 뿐
그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만해보일 수 있는 그 신호는 어디서 왔을까요?
위축된 걸음걸이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시선이 바닥으로 내려간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어깨가 말린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전에 이미 위축될 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늘 눈치를 봐야 하는 집에서 자랐거나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크게 혼난 경험이 반복됐거나
어딘가에서 이미 한 번 크게 상처 입었다거나.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리신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가족 탓 – 부모 양육태도와 자존감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러니까 만만해보일 수 있는 신호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순서를 거꾸로 읽으시면 안 됩니다.
당신이 그 신호를 만든 게 아니라,
당신이 겪은 일이 그 신호를 만든거죠
그 신호는 ‘만만함’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신호를 나쁜 사람이 읽었다는 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신호는 나쁜 사람한테만 보이는 게 아닙니다.
당신을 아꼈던 사람들도 똑같은 신호를 읽었습니다.
한번 떠올려보세요.
살면서 이런 말 들어본 적 없으신가요.
“너한테는 속마음을 털어놓기 편해.”
“너는 화내지 않고 차분히 들어줄 것 같아서.”
“너라면 이해해줄 것 같았어.”
친구가 힘들 때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이 당신이었던 적이 있으실 겁니다.
아무한테도 못 하는 얘기를 당신한테만 한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자기 사정을 털어놓은 적도 있으셨을 겁니다.
그 사람들이 읽은 신호와
당신을 괴롭힌 사람이 읽은 신호는 정확히 같은 신호입니다.
부드러운 표정. 낮은 목소리. 상대를 밀어내지 않는 자세.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 태도. 화를 잘 내지 않는 반응.
좋은 사람은 그걸 신뢰로 읽었습니다.
나쁜 사람은 그걸 기회로 읽었습니다.
같은 신호이지만 그걸 읽는 사람이 달랐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가진 건 만만함이라고만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다른 표현으로는 안전함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은 그걸 없애야 할 결함으로 알고 살아왔을 수 있지요.
그럼 뭘 바꿔야 할까?
많은 분들이 이 지점에서 이렇게 결심하십니다.
“이제 세게 나가야지. 누구에게도 만만하게 안 보여야지.”
그런데 이건 관계에서 도움이 되었던 안전함 마저 없애는 방향입니다.
타고난 성격이나 스타일과도 맞지 않을 수도 있구요.
안전함을 없애면 나쁜 사람도 안 오지만, 좋은 사람도 안 옵니다.
그리고 이는 마음 편히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고립으로 이어지겠지요.
바꿔야 할 건 신호 자체가 아닙니다.
그 신호를 누구에게 열어줄지를 내가 고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신호가 항상 켜져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나를 이용할 사람에게도 똑같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먼저 다가온 사람이 그걸 가져갔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건 스위치입니다.

- 이 사람이 내 시간을 존중하는가
- 내가 거절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 나에게 하는 대접과, 자기보다 높은 사람에게 하는 대접이 같은가
- 내가 힘들 때 이 사람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걸 제대로 확인한 다음에 상대를 배려하는 스위치를 눌러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스위치를 켜고 끄는 기능이 무엇인지 아나요?
바로 내가 그 정도 대접을 받을 사람이라는 감각입니다.
이 감각이 없으면 이 스위치를 못 씁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 앞에서도
“내가 예민한 건가..”라고 되묻게 되고, 결국 또 저자세로 나가게 됩니다.
반대로 나를 가치있게 여기는 감각이 있으면 몸이 먼저 압니다.
어떤 사람 앞에서는 어깨가 펴지고 경계를 유지하며,
어떤 사람 앞에서는 목소리가 낮아지고 편안한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문제는 몸짓이나 걸음걸이가 아니었습니다.
걸음걸이는 증상이었고, 그 아래엔 자존감이 있는 거죠.
정리하면
- 사람은 몇 초 만에 만만한 상대를 고릅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 그런데 그들이 고른 기준은 약함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었습니다.
- 그 ‘예측 가능성’을 만든 건 당신의 성격이 아니라, 당신의 과거 때문일 수 있습니다.
- 그리고 그 신호는 만만함이 아니라 안전함이었습니다. 나쁜 사람이 그걸 이용한 거였죠.
- 바꿔야 할 건 안전함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걸 열어줄 사람을 고르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당신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제대로 된 선별 없이 열려 있던 사람이었죠.
그리고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혹시 지금도 그 스위치가 잘 안 눌리신다면
오늘 글을 통해 내가 왜 만만하게 보였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아셨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사람 앞에 서면 또 말이 안 나오고
또 웃으면서 넘어가고, 집에 와서 후회하는 게 반복되실 겁니다.
그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스위치를 움직이는 힘인 자존감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힘이 지금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 함께 확인해보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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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를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참고 문헌
- Grayson, B., & Stein, M. I. (1981). Attracting assault: Victims’ nonverbal cues. Journal of Communication, 31(1), 68–75.
- Book, A., Costello, K., & Camilleri, J. A. (2013). Psychopathy and victim selection: The use of gait as a cue to vulnerability. Journal of Interpersonal Violence, 28(11), 2368–2383.
- Perry, D. G., Kusel, S. J., & Perry, L. C. (1988). Victims of peer aggression. Developmental Psychology, 24(6), 807–814.
- Olweus, D. (1993). Bullying at school: What we know and what we can do. Blackwell.
